세계화가 식민지 개척이 이루어진 제국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오래된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세계관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본인들의 대륙에 한정지어지던 고대나 중세와 달리 전지구적인 활동이 시작됐다는 점에서는 그 시점이 세계화의 시작은 맞지만, 본격적인 교역이 활성화된 것은 한참이 지난 2차대전 전후의 시기이다.
교역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타지역의 특산품을 수입하는 것이 주목적이였다.
아무리 물가 차이가 난다 해도 아시아의 저렴한 제품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보내지기 위한 운송비용이 워낙 높고,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안가지만 해운기술이 떨어져 선박이 좌초되거나 상품이 분실되는 경우도 많아 교역을 통해 생산원가를 절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유일한 예외가 영국의 면직물 정도랄까.
(과거 영국을 먹여살린 산업은 면직물 산업이었다.)
제조업의 경우 부품 자재의 운송은 컨테이너를 통하는데 주변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지구 반대편에서 대량으로 저렴하게 구입해온다면 원가가 절감된다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상식적인 이유이다.
지구 반대편이더라도 부품이 양호한 품질로 생산되고, 인건비가 저렴하고, 운송비가 원가에 주는 부담이 미미하고 부품 수입 관세가 적을때 가능한 메커니즘이다.
2차대전 시기에만 해도 지역간 인건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운송비용이 높았고, 지금과 같은 범지구적 공급망이 갖춰지기 이전이므로 해외의 완성품 기업에 제공하기 위한 부품 산업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일부 교역이 가능하던 산업들도 규제로 인한 높은 관세장벽으로 무역의 효율이 떨어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부터 급격한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컨테이너라는 개념은 한 트럭 운송업체 사장의 아이디어로 1956년에 새로 생겼다.
미국, 유럽간 높은 관세가 GATT라는 무역협정으로 완화되고 유럽은 유럽연합으로 통합되었으며, 미주는 NAFTA가 등장함에 따라 굳게 닫혔던 멕시코까지도 개방되었다. 이제 관세는 수입품과 내수재의 경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1979년까지 세계경제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던 중국이 등소평의 시장 개방 정책으로 GATT 가입을 읍소했으며, 엄청난 보조금으로 수출산업을 지원하면서 중국 수출상품의 점유율을 급격히 늘려갔다.
중국이라는 저렴한 인건비의 거대한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다국적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기 시작했다.
2006년 머스크라인이 발주한 1만 TEU가 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엠마 머스크호"가 최초로 인도되었고, 2007년 말까지 이러한 규모의 컨테이너선 118척이 주문되었다.
이로써 지구 반대편의 인건비가 저렴하면 그쪽에서 생산된 부품을 쓰는 것이 원가에 도움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들은 모든 공급망을 직접 소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과거 포드가 했던 방식대로 자동차 제조를 위해산림,광산,고무 공장을 직접 소유하고 용광로와 압연공장, 유리, 타이어 공장을 직접 운영해서는 경쟁이 어렵다.
각 부품에 전문성을 가진 해외의 기업에 아웃소싱하는 편이 경제성과 기술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다.
요즘 탈세계화가 추세인데 이런 이점을 기업이 내려놓을 수 있을까?
잘나가는 반도체, 이차전지 기업을 미국에 몰아넣는게 미국 입장에서 공급망 리스크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인건비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다.
시장은 인건비 상승에 무감각한데, 지금 전세계 교역의 0순위 목적은 저렴한 인건비와 규모로 인한 원가 절감이다.
운송가격이 워낙 낮기에 지난 30년간 지역을 가리지 않고 부품가격 아비트리지를 누린 것이다.
이 기간동안 공급망은 위치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위치가 중요해졌다.
인건비나 규모의 경제는 2순위이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역사상 그 어느시기보다 금리가 많이 내리고 화폐가 많이 찍혀 원자재가는 올랐다.
다만 공급망 효율로 원자재가 상승이 제품가 상승으로 직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처럼 100년 가까운 시간을 놓고 크게 보면 계속 처방되던 공급망 효율이라는 약을 갑자기 끊음으로 물가가 소급적용되어 오르는게 당연한 논리인데, 시장은 한두분기 물가를 보고 금리를 내리네 물가가 잡히네 하고 있다.
제품가격이 안오른다면 그만큼 기업이익은 감소할 것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경기가 꺾여야 한다는건 두가지 의미이다. 수요를 죽요서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것 하나와, 억지로 제품가 인상을 억제하면 기업이익이 줄어든다는 것.
시장은 첫번째만 생각해서 잠시 수요죽이고 물가 잡으면 개운하게 다시 출발할 수 있다고 믿으려는거 같고, 믿는대로만 보이는 인지부조화가 아닌가 싶다.
두번째 의미는 거의 생각 안한다는 것이다.
보면 알겠지. 누가 맞는지.